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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평야 넓은 들녁이 일제 강점기에는 아픈 역사 현장이란 사실!!!

수탈된 곡물은 철도를 이용 군산으로 운반 배를 이용 일본으로 가져간 것은 다 아는 아픈 역사..

그중 한 곳이 오래 전 대야역 인 것을...

 

 

 

#1. 1912년 지경역으로 문을 연 이래 아픔으로 점철되는 역사를 안고 1953년 대야역으로 역명을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컨테이너 물류기지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가끔씩 왕래하는 통근열차만 정차하는 곳이다.

     역무원한테 신원을 확인하고 짧은시간이나마 역 구내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 받은 후에 들어갔더니 

눈에 먼저 띄이는 것은 역 구내 너머로 보이는 넓은 평야지대 였다.

 

 

 

 

 

#2.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은행잎을 떨구는 채로 역 구내를 지키고 있었고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1980년대의 유행하였던 역사형태는 드물게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조금 일찍 올걸 하는 아쉬움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가지를 보면서 생각이 든다.

     짙은 색을 내며 떨어진 나뭇잎이 이리저리 나뒹구는 것이 겨우사리를 준비해야 하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싶다.

 

 

 

 

 

#3.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쓰여진 행선지판은 오래전에 세워진 것처럼 승강장에 우뚝 서 있었는데 모양이 예쁘다.

 

 

 

 

 

#4. 임피 방향..

     근데 승강장을 더 넓힌 흔적이 보인다.

아마 2008년부터 기존의 장항선이 연장을 하여 군산선이 사라지고 익산까지 열차가 운행하기때문에 승강장 길이를 더 늘여야 했는 것 같다.

     그렇게 할 바에 신경을 좀 써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임시적으로 땜빵형식으로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보는 사람의 눈에는 좋게 비추어 지지 않는다.

 

 

 

 

 

#5. 우리나라에서 산을 볼 수 없는 넓은 평야지대가 존재하고 있는 곳이 여기다.

     넓은 곡창지대를 거의 볼 수가 없었던 터라 역을 답사를 하며 호남평야와 군산항에 대한 일제강점기시대에

     아픈 역사의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임피, 대야역을 보면서 또한 부근  어르신들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군산선 선로가

      그 이동통로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니 우리에게 이로움보다는 그들의 편리에 의하여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선로라는 것이다.

 

 

 

 

 

#6. 개정방향..

     승강장을 양쪽 방향으로 길이를 늘여났다.

     우측으로 나 있는 주변 공업지대에서 생산된 제품의 컨테이너 박스가 잔뜩 쌓여져 있고 이들이 대야역의 주 수입원이지만 오래된 티가 나는

     승강장의 모습이나 오면서 보았던 대야시내의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것들은 이상하게 아픔이라는 단어가 생긴다.

     워낙 짧은시간에 역 구내를 왔다갔다 하며 렌즈에 담았기에 또한 역무원께서 그렇게 허락을 하였기에 쫒기듯이 역을 빠져나왔다.

 

 

2007년 늦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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