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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양에서 삼랑진 방향으로 가다보면 임천리에서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경작지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데 근처

밭이나 논 또는 개천에서는 많은 기와와 자기(磁器)조각들이 발견되었다.

현재 서 있는 곳이 원위치인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절터로 추정되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리사(加利寺)의 터라고 한다.

현재 이곳에 절터로서의 특별한 유구(遺構)나 유적은 없으나 2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근처에서 자기와 명문와(銘文瓦), 석재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 하며

지금도 논두렁과 축대 등에는 오래된 석재가 눈에 띈다.

석탑의 구조는 단층으로 구성된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건조하였는데 상륜부(相輪部)는 결실되었다.

기단부를 받고 있는 지대석(地臺石)은 자연석과 강회를 다진 지반 위에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결구하였으며 이 위에 놓인

단층의 기단 면석(面石)은 4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다.

그중 남쪽 면석만은 오른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의 하반부를 다른 돌로 끼웠는데 이것은 석재 다듬기 형편상 부득이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각 면석의 조립형식은 양쪽을 길게 놓고 그 사이의 앞뒤에 짧은 판석을 넣은 일반적 법식을 보이고 있으며 각 면에는 너비 15∼17㎝의 우주가

양쪽에 모각되어 있다. 기단 갑석(甲石)은 2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는데 하면에는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마련되었고

상면에는 약간의 경사로 각 모퉁이에 합각선(合角線)이 뚜렷하며 중앙부에는 높은 원호와 각형(角形)을 조각한 굄대로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3층의 옥신과 옥개석을 각기 1석씩으로 조성하였는데 그 중 2층옥개와 그 위의 3층옥신만은 같은 돌로 조성한 점이 특이하다.

각 층의 옥신에는 각 면 양쪽에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어 있고 각 층의 체감도 뚜렷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각 층의 옥개석은 옥개받침이 3단씩이고 상면에는 1단의 낮은 굄으로 그 위의 옥신을 받고 있다.

각 옥개의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두꺼운 편이나 네 귀퉁이의 전각(轉角)에 반전이 심하여 경쾌한 느낌을 준다.

3층옥개석의 상면에는 지름 7㎝, 깊이 10㎝의 원형찰주공(圓形擦柱孔)이 있고 이 윗부분인 노반석(露盤石) 이상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단층으로 구성되고 옥개석의 낙수면이 급경사인 점, 옥신 굄이 낮은 1단으로 약화된 점, 각 부의 돌다듬기 및 건조양식,

각 부재의 결구수법 등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탑의 높이는 3.2m이다. 탑 모양이 경주 서악리 삼층석탑과 비슷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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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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