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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신 柳成龍의 고택으로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남기고 있다. 
卯坐酉向으로 자리잡은 이 주택은 서향 전면으로 줄행랑채를 두고 그 안쪽으로 ㅁ자모양의 안채와 一자모양의 사랑채를 연이어 건축하였다.
솟을대문이 선 줄행랑채는 광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마주 보이는 사랑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과 대청, 방과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ㆍ대청ㆍ건넌방을 두었다.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두 칸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또, 부엌 앞에는 찬방ㆍ고방ㆍ헛간이 있고 중문간 행랑채와 연속되어 있다. 사당은 사랑채 동쪽의 따로 쌓은 담장 속에 건축되어 있다.
이 충효당의 구조는 보수 때의 개작으로 보이는 견치석쌓기에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주두없이 납도리를 받치고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 소로를 두어 납도리의 장여를 받친 민도리소로수장집이다.
가구는 오량이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사랑방과 대청의 전면과 측면에는 계자 난간을 설치하였다. 
안채는 견치석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대청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나머지에는 방주를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끝에 쇠서가 없는 첨차형의 부재를 두고 다시 보다 큰 첨차형의 부재를 받쳐 대량과 납도리의 장여를 받치게 된 
몰익공식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방형의 화반을 두어 납도리 밑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걸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있다. 
종보 위에는 삼각형의 판대공에 첨차와 소로를 짜 넣어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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