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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은 이런 것이다 하는 정의가 있는 역!!

역이 폐역이 되어 점점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

이름도 아는 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

미룡역이다..

 

 

#1. 좌측 멀리는 옥계천이 흐르고 넓은 평야지대 옆 야산밑에 위치한 미룡역..

     김천에서 104.6km 지점에 있는 덩쿨이 역사를 덮힌 모양인데 초겨울이라선지 형태만 남아있는 것이 을씨년스럽다.

 

 

 

 

 

#2. 미룡역.

     1971년 역 업무를 시작하여 1997년 정식으로 폐역이 되었으니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경북선의 많은 폐역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역사인데 역 내부는 온통 쓰레기로 꽉 차있으며

역에서 썼던 물건들도 섞여있다.

     아마 역 안을 정리하면 귀중한 자료가 나올듯 한데 난 있는 그대로가 좋아 보기만 한다.

     역사가 이렇게 남아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미룡역사는 예전에 개인집으로 활용이 되었기에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다고 한다.

     볼 품 없고 흉가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미룡역사이다.

 

 

 

 

 

 #3. 내부를 살필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인것은 옛 미룡역 시간표와 요금표이다..

     꽤 오래되었던 시간표인데 비둘기호와 잊혀진 역들의 이름이 보인다.

     아마 250원이 비둘기호의 기본요금 같은데 적어도 이십년전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4. 반구방향..

     모든것이 흔적만 남아있는 정겨운 역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을 찾았을 때 감흥이란 모든것이 갖추어진 역을 방문할 때보다 더 벅찬 감정이 올라온다.

     그것이 간이역을 찾는 매력이니까..

 

 

 

 

 

#5. 어등역 방향..

     미룡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니 멀리 좌측에 보이는 오두막집에서 아주머니가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아주머니한테 미룡역에 열차 안다닌지 꽤 오래되었지요 라고 인사말을 전하자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가끔씩 나 같은 사람이 찾아온다나 여기서 사시는데 무섭지 않냐고 묻자 그런거 없다며 웃음을 머금으신다..

 

 

 

 

 

#6. 멀리서 미룡역을 바라보면 누가 기차역이라 하겠는가?

     그냥 누군가의 집으로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 기찻길옆 오막살이 그 모양새가 알맞다.

 

 

 

 

 

#7. 어등역에서 건널목을 지나 옥계천을 따라 도로를 올라오면 조그마한 다리인 미랑교와 미석교를 건너는데 미석교에서 소룡리 마을로 들어가면

     건널목을 만나고 건널목에서 선로를 따라 조그만 가면 미룡역이 보인다.

     원래 미룡역 가는길은 건널목 못 미쳐 야산 밑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야하는데 처음 오는 사람은 이 길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선로를 따라 가는 것은 안전에 문제가 있지만 워낙 열차가 뜸한 곳이라 살짝 위험을 무릎쓰고 선로를 따라 가면 덩쿨을 뒤집어 쓴 외딴집이 보이는데

     미룡역사이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 십여년전에 모든것이 멈춘 곳에 그래도 흔적을 찾아 발품을 한 나로서는 모든것이 그대로 인것을 보았을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누군가 오래전 미룡역의 일상에 대하여 글을 적은게 있어 인용해 본다.

 

      폐역이 된 미룡역은 지금은 마을의 흉물이지만 주민들이 국회의원 ‘빽’까지 동원해 만든 귀한 역이다. 역이 없을 때 영주시 장수면 소룡2리 주민들은

     외부로 나가려면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는 4.5km, 불법이지만 기찻길 따라 3km를 걸어

     어등역으로 나가야 했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주민들은 기찻길이 마을 바로 앞을 지나는지라 욕심을 좀 부렸다.

     영주 출신 4선(6,7,8,10대) 국회의원으로 교통부장관까지 지낸 김창근 의원(작고)에게 “우리 마을에도 역을 만들어 달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리하여 1971년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철로의 직선구간인 논(!)과 숲(!) 사이에 승강장이 만들어졌다. 역이 설 만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강장이면 어떤가. 어엿한 철도청의 역원 배치 간이역으로 미룡역이라는 문패까지 어엿하게 달게 됐는데 김천과 영주를 운행하는 비둘기호가 하루 2번,

     점촌과 영주를 다니는 통근열차가 하루 2번 정차했다. 특히 2량짜리 통근열차는 도시의 만원버스마냥 학생들을 꽉꽉 채워 다녔고 어떤 날은 기관차나 화차 위에

     태우기도 했다.
     논밭에서 흩어져 일하던 주민들은 기차가 역에 들어오는 소리를 신호로 같이 모여 앉아 새참을 먹고, 기적 소리에 맞춰 새마을 
구판장에서 주민회의도 열었다.
     1982년 28번 국도 문경-영주 구간이 포장되면서 3km를 걸어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 3km 걸어야 한다는 이유로 역을 
유치했던 주민들이지만

     운행횟수가 많다는 점에서 버스는 더 매력적이었다. 3km 떨어져 있던 버스정거장과 힘겨운 싸움을 하던 미룡역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1984년 승차권대매소영업이 중지됐다.
     1998년이 되자, 버스가 마을 앞까지 들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는데, 바로 이 해 점촌-영주 간 비둘기호 
통근열차 운행이 중지됐다.

     “버스도 오고 집집마다 차도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역을 잊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자동차는 트럭까지 합쳐 모두 일곱 대다. 무엇이 이들에게

     “집집마다 차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박미경 매일노동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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