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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안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이다.

   국보 제117호. 높이 273㎝. 지금은 광배(光背)와 대좌를 모두 잃어버리고 불신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불상은 왼쪽 어깨 부분에 8행의 불상 조상기가 음각되어 있다.

   명문에는 858년(헌안왕 2) 7월 17일에 당시 무주(武州)와 장사(長沙: 지금의 장흥)의 부관(副官)으로 있던 김수종(金遂宗)이 발원하여

   이 불상을 주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보조선사탑비(普照禪師塔碑)에는 859년 부수(副守) 김언경(金彦卿)이 사재를 들여 2,500근의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주성하였다고 한다.

   위의 두 기록을 종합해보면, 이 불상은 858년에 착수되어 859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머리 부분은 나발(螺髮) 등을 덧붙인 것이어서 그런지 몸집에 비하여 크게 보인다.

   머리와 불신의 비율이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大邱桐華寺毘盧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 보물 제244호)과 비슷한 것이며,

   당시의 불상 비례를 반영하고 있다. 육계(肉髻)가 비교적 큼직하며 얼굴은 달걀형으로 비만하다.

   편편한 콧잔등, 가늘고 긴 눈, 사다리꼴의 두드러진 인중, 작은 입 등은 상당히 추상화된 경향을 나타낸다.

   당당한 자세와 가슴의 표현, 팽창된 체구 등 건장한 불신을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권인(智拳印)을 한 상체가 약간 움츠러들어 위축된 듯한

   느낌을 준다. 즉 당당하게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옷주름 선에서도 잘 나타난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양어깨를 감싸며, 가슴 앞에서 V자형으로 모아지고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평행의문선(平行衣文線)의 옷주름은 유려한 곡선을 이루면서도 힘없이 늘어져 탄력이 없이 표현되었다.

   이와 같이 다소 해이해진 형태와 선의 특징은 도식적이고 기하학적인 특징의 묘사와 더불어 9세기 후기 불상 양식의 선구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이 더 발전하여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到彼岸寺鐵造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63호)이나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奉化鷲棲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 보물 제995호)과 같은 9세기 후기 조각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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