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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완주군 고산면 봉림사지에 세워져 있던 높이 2.5m 석등으로 일제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의 가운데기둥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은 모습으로, 표면에 구름속을 요동치는 용의 모습을 새겼는데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화사석은 4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아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 면에는 4개의 창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번갈아 두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화사석에 새겨놓아 등불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8각으로, 각 모서리선이 뚜렷하고, 밑면의 받침을 1단으로 새겼으며, 곡선을 그리는 처마는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시원하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된 머리장식 받침대를 마련해 놓았으나,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화사석의 사천왕상, 지붕돌의 양식 등은 모두 통일신라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받침부분의 기둥이 4각으로 옮아가고, 화사석 역시 4각을
   닮은 8각으로 이루어져, 8각에서 4각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다.
   석등을 만든 시기도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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