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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사에 있는 이 탑비는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상실되었고, 3조각으로 절단된 비신만이 복원되어 있다.

   비의 주인공인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1085년(선종 2)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6년(예종 1)

   중대사(重大師),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1144년(인종 22)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행서로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국사의 문도들의 성명이 해서로 새겨져 있다. 건립연대는 비문이 파손되어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 인종이 국사로 봉하고, 윤언이(尹彦頤)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추정된다.

   서자(書者)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왕희지의 행서를 기반으로 생기가 도는 글씨이다. 비신 앞면 상단부에는 ‘圓應國師碑銘’이라는 제액이 해서로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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