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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 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지붕돌이 얇고 넓어 빗물을 받는 낙수면이 평평한 점이나, 탑신부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은 점 등 백제석탑의 양식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언제 제작되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으나 1965년 보수작업 때 기단의 구성양식과 기단 안에서 찾아낸 사리장치의 양식이

     밝혀지면서 그 시기가 비교적 뚜렷이 밝혀졌다. 
     즉,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석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과정에서 지금의 석탑에 앞서 목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이 탑 밑부분에서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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