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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절을 언제 세웠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고 신라 말기에 체징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송광사의 3조사(三祖師)의 화상(畵像)을 모시기 위하여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창건하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한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어 경내 하사당(下祠堂)과 함께 같은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의 특색은 정면을 4칸으로 한 것과 양 측면에 측고주(側高柱)를 세워 전면쪽을 퇴칸(退間)처럼 가구한 점이다.

   공포(공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으로 짜임새는 단순하나 세부수법에 장식적인 요소가 짙게 나타나 있다.

   공포는 헛첨차(虛첨遮)로부터 전개되고 행공첨차(行工첨遮)와 통장혀(通長舌)가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게 하였으며, 내부에서는 헛첨차와 살미(山彌)가

   보아지가 되어 힘있게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현재 대들보 윗면에 우물천장을 전면 가설하였으나 그 위의 가구부재(架構部材)가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초에는 연등천장이었던 것 같다.

   대들보 위의 가구는 동자주(童子柱)가 종보를 받게 하였다

 

                                                                                                                                                                                           문화재청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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