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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터널이었다.

터널 통과후 멋드러진 S자 곡선을 따라가면 승강장 곡선이 멋진 간이역에 도착하게 된다.

산골마을 간이역으로서는 도로 교통보다 철도가 조금은 편안 동네가 이 곳이다.

 

 

#1. 녹동에서 영양으로 향하는 31번 국도를 가면 방고개를 넘어가고 선로는 임기 1터널을 지나는데 이 터널의 길이가 꽤 길다.

     터널을 지나치면 선로는 또다시 오름길을 재촉하고 산줄기를 따라 좌측으로 큰 곡선을 도는데 그 정점에 임기역이 있다.

     도로는 고개를 너머 내리막을 가다가 좌측으로 조그마한 산골 동네인 임기를 지나쳐 영양으로 향한다.

     임기역은 임기의 언덕위에 위치해 있어 마을 전체를 품고 있으며 마을의 모습은 옛날의 탄광으로 인한 번창한 시절이 아닌

산골 조그마한 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2. 1957년 역사를 신축하고 문을 연 임기역은 본격적인 영동선의 아름다움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시작점이며 승강장및 역 구내가 멋진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위의 보이는 산세들이 이곳이 어떠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산골역이지만 주변의 옛 가옥들의 밀집이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듯 하지만 모두 한참 흘러간 시절의 모습들..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모습이 아닌 이삼십년전에 힘들게 살았던 시절의 모습을 아직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3. 행선지판도 구형 지주형 형태이며 색상도 반은 바래지고 군데군데 녹이 쓴 자국들은 오랜시간을 보여준다.

     뒷편으로 보이는 가옥들이 현재 임기역 주변 모습이다.

 

 

 

 

 

#4. 녹동역 방향..

     선로는 좌측으로 곡선을 이루며 멀리보이는 산 모퉁이를 지나면 우측으로 급하게 또 한번 곡선을 이루며 잠시 후 임기 1터널을 향하여 간다.

     보기는 아름답고 산의 내음도 맡을 수 있지만 찾아가는 길은 어렵고 또한 살아가는 방법 또한 힘든 여정이다.

 

 

 

 

 

#5. 임기역은 나한테는 오래전에 기억이 있다.

     학교 입학때문에 부산행 무궁화호(그때는 묵호에서 부산가는 무궁화 한대만 있었음 낮에는.. 지금의 #1682 열차 전의 모습)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면 부산에서 올라오는 강릉행 무궁화호와 임기역에서 교행을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기억으로는 임기역이 손님들도 꽤 있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은데..

     교행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남았는데 그때보고 지금에서야 찾아본 역은 다른것은 기억에 없고 승강장 긴 곡선이 눈에 선하다.

     그 시절에는 부산행 무궁화의 객차를 10량을 달고 다녔기때문에 그 길이가 만만치 않았던 때였다.

 

 

 

 

 

#6. 현동 방향..

     임기역은 고갯마루의 정점에 있기때문에 현동쪽으로는 조금 내리막길을 향하다가 좌측으로 곡선을 이루며 조그마한 터널로 모습을 감춘다.

     터널을 빠지자 마자 영동선 최고의 비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 기다리고 있다.

 

 

 

 

 

#7. 임기역 끝머리에는 고가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산골마을도 조금 더 편리하게 다니기위해서 선로를 지나치는 고가를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왠만한면 땡땡거리는 건널목이 우선이겠지만 요사이 사람들은 그렇치가 않다. 안전위주이고 편리성, 자동차의 운행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

     다만 안타까운 점은 주변을 황폐화시키면서 일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8. 고가위에서 임기역 전경을 본다.

     건너편 마을로 가기위한 길인 것 같은데 산 비탈을 깍고 콘크리트 옹벽을 치면서 선로의 옛스러움은 사라지고 만다.

     시골역은 조금이라도 옛스러운 맛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고 만다. 내가 편하면 다니까. 공사하기 편하면 되니까..

     임기역을 지나면 선로는 본격적인 낙동강 유역으로 들어서고 현동역까지 피암터널등 꽤 많은 터널을 지나치며 가는 구간이 영동선의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또한 도로도 없을뿐더러 인적의 흔적은 거의 없는 곳으로 선로는 지나치고 다만 임기에서 영양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좌측으로 나 있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이 낙동강을 구비돌며 현동으로 향한다.

     자동차길로 가기도 꽤 먼 길이고 영동선과 거의 같이 동행하는 길이라 주변의 경치는 직접 가 보지 않고 글로써 설명하기는 내 실력이 부족하다.

 

 

 

 

 

#9. 임기역을 벗어나서 현동방향으로 조금 걷다보면 터널이 나온다.

     터널을 지나서면 계속 터널로 이어지는 영동선 낙동강 비경이 펼쳐진다.

     도보로는 힘든 여정이지만 워낙 험한 곳이라 열차 꽁무늬에서 보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10. 마침 옛 기억에 남아있는부전~강릉 행 열차가 임기역을 통과 달려오고 있다..

달리는게 아니라 천천히 온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천천히~~~

 

 

 

 

 

#11. 임기역 가기전 임기1터널 위에서 바라보는 임기역 방향 S곡선..

 

 

 

 

 

#12. 임기 1터널 임기방향 원경

 

 

 

 

 

#13. 임기1터널 근경 길이 971m

 

 

 

 

 

 

 

오래전 한국일보에 세상속으로 라는 칼럼에 임기역에 대한 오래전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이 있어 인용해 본다.

 

 

 

     산골靜寂에 묻힌 탄광 추억 완행汽笛에 봄잠을 깨고…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이어져 마을을 둘러 안은 곳.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작은 역사(驛舍)가 동그마니 올라앉았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에 있는 임기역(林基驛)이다.

     봄 기운은 어느새 산간에도 스며들어 봉우리 사이 좁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은 벌써 나른하다.

     대합실은 텅 비고, 역 앞 마을 오솔길에도 인적이 끊겼다. 살랑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고개가 돌아갈 만큼 사위는 한 없이 조용하다. 간혹 적막을

     깨는 것은 무심히 지나는 열차 뿐. 그러나 여기서는 기적도 낮고 얌전하다. 고요한 산중에서 들리는 기적소리만큼 애잔한 것이 또 있을까.

     세상이 어지럽고 살아가는 일이 힘겨울 때면 문득 마음 속 고향처럼 선연히 떠오르는 곳. 젊은 날 한번쯤은 아련한 추억이 있었을 것만 같은 곳.

     간이역은 그 이름만으로도 애틋하다. 임기역은 그런 곳이다.

     동해바다 푸른 파도가 발끝에 와 닿는 정동진역,섬진강 아침 안개가 피어 오르는 수묵화 같은 풍경 속의 압록역,….

     그러나 임기역은 그 역들처럼 아름답지 않다. 그저 골짜기의 낡은 집 몇 채와 언덕배기 텃밭이 배경의 전부다.

     그렇게 평범해서 오히려 간이역다운 곳이다. 거기 봄날 햇빛 속에 서서 하염없이 철길을 바라보노라면 난데없는 외로움에 눈물이 돋는다.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고즈녁해도 정작 임기역 식구들은 한가로움을 즐길 틈이 없다. 역무원이라야 역장을 포함해 고작 6명.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니

     근무인원은 늘 3명 뿐이다. 임기역은 영주와 강릉 사이 오지를 달리는 영동선에 있다.

     이 역에 서는 통일호 완행열차는 하루 왕복 4편에 불과하지만 종일 오가는 열차는 35~39편이나 된다.

     열차가 통과할 때마다 사령실과 매표실, 업무실까지 겸한 서너평 남짓 역무실은 부산해진다.

     “542 발차.” 앞선 역에서 열차가 떠났다는 무전이 오면 역장 최용수(崔龍水·55)씨와 권형택(權亨澤·37) 주임은 모자를 눌러쓰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푸른 재킷에 빨간 넥타이, 회색 바지차림의 유니폼이다.

     2~3분 뒤 “땡땡땡땡” 소리가 스피커로 울려퍼질 때 쯤이면 둘은 이미 철로 변에 차렷자세로 서 있다.

     S자로 크게 휘어진 철로를 따라 열차가 산 구비를 돌아나오면 역장은 손에 감아 쥔 붉은 깃발로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면 화답하듯 길게 기적이 운다. “혹 기관사가 졸지않나 점검하는 것이지요. 기적은 ‘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다’하는 뜻이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냥 의식(儀式)이지요.”열차가 스쳐 지나갈 때면 역무원과 기관사는 경례를 교환한다. 워낙 속도를 낼 수 없는 구역이라 잠깐사이 안부도 오간다. 

     “역장님, 별일 없읍니꺼.”

     “그래, 수고해라.”

     열차가 역을 들고날 때 역장은 교통정리 하듯 손을 뻗어 앞뒤로 열차를 가리킨다. 육안으로 보아 열차의 앞뒤 상태에 이상 없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영화 ‘철도원’ 속 호로마이역 사토(佐藤) 역장의 몸짓과 그대로 닮았다. 그러고 보니 기차가 안 보일 때까지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고 선 최 역장의 단단한 뒷모습도

     마찬가지다. 다만 영화의 눈 내리는 배경이 쓸쓸한 봄날의 햇빛으로 바뀌었을 뿐.

     수시로 철로에 나가 이물질 유무를 점검하고 조임 상태 등을 확인하는 것도 역무원의 일이다. 폭설과 영하 20도 밑 강추위가 이어지는 겨울에는 납땜에 쓰는

     토치램프를 들고 나가 일일이 선로전환 구간에 낀 눈과 얼음을 밤새 녹인다.

     봄부터 가을까지 간이역 철로변마다 화사하게 피는 꽃들도 역무원들이 직접 씨 뿌리고 가꾸는 것이다.

     임기역 역무실 벽 한켠에는 일일 영업목표가 붙어있다. 거기 적힌 하루 차표 판매액 목표는 7만원. 서울이나 강릉까지의 장거리 승객 너댓명만 있어도

     훌쩍 넘길 액수지만 요즘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마을에 어디 다녀올 일이 없는 노인들만 남은 때문이다.

     찾은 날은 마침 10여분 거리에 있는 춘양에 장이 서는 날. 아침 10시30분 열차를 타러 9명이나 대합실에 나왔다.

     “반찬거리라도 사러 가야지.” 그래 봐야 모두 경로우대 승객이니 반액 할인해 600원씩, 모두 5,400원이다. 수입에 도움은 안돼도 오가는 말 인정만큼은

     푸짐하다.

     “할머니, 이따 맛있는 거 많이 사갖고 오이소.”

     “응, 그려. 나눠 줄 테니 기다려.”

     하루 해가 넘어갈 무렵 장에 갔다 온 이들이 돌아오면서 역은 딱 한번 더 수런거린다. 이날 승객은 이 들이 전부였다.

     “제가 9년 전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작아도 아주 잘 나가가는 역이었어요.”

     그러나 주변 탄광, 석회광들이 줄줄이 폐광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일자리가 없어진 마을 청년들도 하나 둘 대처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300호 남짓한 마을은 태반이 비었다. 500명쯤 남은 노인들은 산 경사면을 따라 고추, 담배를 심어 생계를 잇는다. 동안(童顔)의 권 주임은 이 마을에서

     가장 어린 주민이다. 역사 철로변에 살면서 쉰살 안팎의 몇몇이 가입해 있는 ‘임기2리 청년회’ 일을 맡아보고 있다.

     임기역에 낯선 손님들이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방학이나 휴가철이다. 관광지가 없으니 놀러왔을 리는 없고, 대부분 깜빡 졸다 허겁지겁 잘못 내린 승객들이다.

     마을에 여인숙이 없어 다음날 열차가 올 때까지 꼬박 역사에서 밤을 새운다.

     내심 이들이 반가운 역무원들은 고구마, 옥수수를 내놓으며 외지 얘기를 듣는다.

     간혹 한밤에 어린 중고생이 불쑥 찾아들 때도 있다. 인근 또 다른 산간마을에서 가출한 아이들이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여기 뿐인 까닭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 아이가 도망갔는데 좀 잡아 주이소.”

     동틀 녁까지 설득해 부모에게 넘겨준 적이 여러 번이다.

     “한번은 눈이 펑펑 오는 밤에 잘 차려입은 중년 부인과 젊은 여자가 내렸어요. 여기엔 택시도 없는데 그 시간에 해발 1,000m 가 넘는 일월산의

     ‘황씨 부인당’ 암자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아들 낳는 전설이 있는 곳이지요. 할 수 없이 차에 태워 가다 고개를 못 넘고는 돌아와 역에서 재운 뒤 다음날 새벽

    군 차량에 부탁했습니다. 나중에 서울에서 ‘고맙다’는 편지는 왔는데 글쎄, 아들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마을 노인들에게 임기역 직원들은 단순한 역무원 이상이다. 독거 장애노인을 매일 돌봐주는 보호자이기도 하고 온갖 궂은 민원을 찡그리지 않고 받아주는

     젊은 일꾼들이기도 하다.

     “전화 고장 났는데 어디 신고 좀 해주소.”

     “여기 서울인데예. 할머니가 전화를 안 받아요. 무슨 일 없나 좀 가봐 주이소.”

     고구마 몇 알에 서류, 편지 대필 부탁도 들어온다. 그 뿐이 아니다. 마을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 보니 뜻밖에 소방서 일도 한다.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고

     사이렌을 울려 의용소방대를 출동시킨 적이 벌써 세번이다.

     따뜻한 마음을 근엄한 표정 뒤에 감춘 최 역장은 전국 간이역을 지키는 역장 가운데 최연장자다. 철도에 들어온 지 35년. 역시 철도원이 된 큰 아들은

     매일 아버지가 일하는 역을 지나는 영동선 부기관사다. 최 역장은 새벽에 영주 집을 나서 꼬박 24시간을 일한 뒤 이튿날 아침 퇴근해 잠깐 쉬고는

     다음날 새벽 또 집을 나선다. 일하는 날 세끼는 역사에서 직접 끓여 먹는다. 달리 틈을 낼 방도가 없어 제사니, 휴가니 하는 것들은 남의 일이 된지 오래다.

     아마 몇 년 뒤면 임기역에서 더 이상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최 역장은 2년 뒤면 정년을 맞고, 권 주임도 초등학생 딸이 마을 분교를 졸업하면

     중학교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무엇보다 철도 민영화니, 공사화니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익 없는 임기역이 얼마나 버텨낼 지 걱정이다.

     “그 생각만 하면 울적해 집니다. 고향처럼 정이 든 곳인데…. 여기는 워낙 외진 곳이어서 버스도 들어오지 않아요. 역이 폐쇄되면 노인들은 꼼짝할 수도 없지요.”

     최 역장의 눈가에 쓸쓸한 그림자가 어린다.

     일상의 삶에 지치고 상처를 입으면 한번쯤은 무작정 영동선 열차를 타볼 일이다. 구비구비 산허리를 하염없이 돌아가다

     문득 임기역에 이르면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려 찾아보라. 당신들의 마음의 고향을 지키는 이들이 거기 서 있을 터이니.

     혹 시간이 있다면 내려서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면 사람 좋은 권 주임과 함께 개울에 내려가 고기잡으며 구수한 간이역 이야기에 취해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 한국일보 세상속으로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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