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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사는 계룡산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惠明大師)가 중건한 후 의상이 도장을 설치하고 법당을 중수하여 규모가 컸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시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보물 256호인 갑사철당간 및 지주와 고려초기(10C)경으로 추정되는 갑사부도가 있을 뿐이다.

   갑사부도는 원래 갑사 후방 계룡산에 있었던 것으로 1917년까지는 상륜부를 포함하여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그후 도괴되었던 것을 현위치로

   이전하여 재건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은 화려하고 부드러우며 세밀하다.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기본형태인 8각원당형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8각의 높은 지대석 위에 3단의 하대석∙중대받침∙중대석이 놓여 있다. 하대석은 넓고 중대석을 좁은 형태로 되어 있다.

   하대석에는 8각 형태를 지키면서 각 모서리마다 밑에서 연꽃잎이 피어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 면에는 1구씩의 형태를 달리하는 사자를 새겼는데

   모두 원각에 가깝게 되어 있다. 중대석에는 운룡문(雲龍文)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 수법이 힘차 보인다.

   이 하대석∙하대받침의 조각 안으로는 홈이 파여 있는데 하대석에서 물이 빠지게 장치되어 있다.

   상단에서는 이 홈의 중앙에 또 한 단의 높은 8각받침이 솟아 중대석을 받게 되었다. 중대석은 거의 원에 가까운데 각 모서리 위치에 꽃무늬가 솟아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양각되어 있다.

   상대석은 8각으로 밑에 두툼한 부연(浮椽)이 있고, 상면에는 32엽의 연꽃이 돌고 있으며, 중앙에 2단의 괴임이 있다.

   탑신석도 8각인데 전후 양면에 문호형과 문약이 조식되고 그 좌우에 사천왕 입상이 양각되어 있다.
   옥개는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좋아서 안정감을 잃었으나 조각이 정교한다. 처마 밑에 몇단의 층급받침이 있고 지붕에는 굵은 우동(隅棟) 8조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 가는 기와골이 모각되어 있다. 상륜은 남아 있지 않고 후대의 보주가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기백이 넘치고 힘찬 솜씨로 새겼으나 상부에 갈수록 조법이 약해져서 옥개에 이르러서는 정교를 지나 섬약(纖弱)에 이르게 된다.

   특히 기단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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