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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문을 연 이래로 1979년에 현 역사를 신축하고 역세권도 규모가 있었는데 왜 모든사람이 철수를

     하여 빈 역사가 되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도로 교통의 발달은 철도의 사양화를 부축인다..

아픈 현실!!

 

 

 

#1. 역 구내로 들어선다.

     오늘따라 옅은 안개가 끼어있고 새벽 서리가 아직 녹지를 않아서인지 잡초가 짙게 젖어있다.

     역 구내는 꽤 넓게 다가오는데 선로는 다 걷힌 형태이고 부본선 하나도 없는 그저 규모만 큰 간이역 신세다.

 

 

 

 

 

#2. 오랜시간이 지나도 옛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행선지 판은 서 있다.

     이제는 폐역이 되어버린 양정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3. 양정역 방향..

     약간 오르막을 지나면 건널목이 보이고 좀 더 가면 이안철교를 지나 양정역으로 향한다.

     경북선 열차가 뜸하게 자나지만 정지판에 6 이라는 숫자가 열차가 정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4. 구내를 왔다 갔다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꽤 큰 보따리를 들고오는 아주머니가 한분 역으로 들어선다.

     아주머니보고 곧 열차가 들어올 예정인가 보지요? 라는 말을하자 그렇다 하며 나보고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잠깐 이야기하고 아주머니는 영주에 볼 일 보러 가신다고 하며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억양을 쓰며 환하게 웃어준다.

 

 

 

 

 

 #5. 점촌방향..

     역 구내에는 선로를 걷어낸 흔적이 곳곳에 있다.

     예전에는 규모가 큰 역이었던 것 같은데 역무원이 떠나가고 특별하게 남겨진 선로들이 녹만 쓸어가는게 안타깝다.

 

 

 

 

 

#6. 부본선은 걷힌 채 흔적만 있지만 승강장 옆으로 쭉 뻗은 벚나무가 역 울타리를 대신 해주는 모습...

     봄에 벚꽃이 활짝피면 꽤 멋질것 같다.

     승강장 밑으로 낙옆들이 떨어지고 열차를 기다리는 홀로계시는 아줌마의 모습과 저 분을 태워야 하는 열차의 정차...

     코레일의 높은 분들의 눈에는 가차 없는 정리로 귀결이 되겠지..

 

 

 

 

 

#7. 함창역하면 경북선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역으로 알고있었는데 자료를 훑어보니까

2004년에 무배치간이역으로 전락을 해 버린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전에 역을 찾아갔을 때 모습은 맞이방 문만 열어놓은채로 어딘가 모르게 썰렁한 기운이 감돌고

역무원이 없어서인지 역 구내및 주변의 풍경은 온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쓸쓸함 그 자체였다.

 

 

우연하게 인터넷에서 함창역에 대한 글이 있어 인용해 본다.

     함창역이 왜 지금의 암담한 현실이 되었는가 설명해 준다.

 

     장이 섰다. 1951년 개설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명주와 소는 전국적으로 거래가 됐다는 함창 장이다.

     1,000평 규모의 장터에 문을 연 상점은 20여 곳. 그나마 붐비는 곳이 종묘상인데, 촌로 10여명이 부채질을 하고 있다.

     밭에서 직접 키웠다는 농작물을 앞에 두고 웅숭그린 채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낯선 얼굴을 보자 일제히 외친다. “2시 차 타고 집에 
가구로 떨이해 주소~”

     함창읍에서 버스로 30분 들어가면 있다는 하갈리에서 감자가루, 상치, 호박잎을 들고 나온 정복련(80) 할머니의 장날 하루벌이는 2만원. 사람이 없다.
     도로가 생기면서부터다. 함창 장을 북적이게 했던 우시장은 상인들이 트럭을 장만하게 되면서 죽었다. 상인들은 트럭을 몰고 
마을로 소를 사러갔다.

     3번 국도 상주-문경 구간의 포장공사가 완공된 게 1979년. 그로부터 6년 뒤인 1985년 우시장은 문을 닫았다.

     명주를 생산하는 농가는 교촌리에 50여 가구가 남아 있지만 생산협동조합을 만들어 도매상을 통하거나 인터넷으로 도시와 거래하고 있다.

     명주와 소가 사라진 뒤 ‘성장엔진’을 찾지 못하던 함창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떠났다. 이웃 점촌(문경시 점촌동)의 탄광노동자들이 
떠나자 함창은 더 쓸쓸해졌다.

      “여기는 노는 사람이 참 많아요. 뭐 먹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7년 전, 수원에서 함창으로 왔다는 만두가게 아주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소읍들은 어디를 가나 이런 비밀을 안고 있다.

     함창읍의 인구는 1981년 20,717명에서 2005년 7,798명으로 줄었다. 1980년대만 해도 12명의 역무원이 근무했다는 함창역은 2004년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떨어졌다. 장날이면 기차와 역은 장꾼들의 차지였다는데, 오늘 역전 마당의 주인은 한여름 불볕이다.

     철도공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창역의 2004년 승차인원은 17,534명, 강차인원은 15,880명, 여객수입은 1억1천744만원이다. 

     역원 무배치 간이역의 평균 운용비용은 8억1천8백만원. 역원 배치 간이역의 평균비용은 12억4천7백만원.
     함창역은 자신의 운명과 관련된 이 복잡한 퍼즐을 알려고도, 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늦은 오후 자신의 그림자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뜨린 채 오지 않는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합창읍의 가구 수는 3,085호이고, 등록된 자동차 수는 2,305대이다. 함창역 아랫길에 주유소가 생긴 게 1988년이다.

     합창읍의 정신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진호(61) 문화당서점 사장은 “함창은 버스도 줄어들고 있다”면서, 읍의 쇠락을 진정으로  걱정했다. 실제 그랬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대구행 버스가 하루 21회 출발했는데, 18회로 줄었다. 부산과 충주로 가던 버스는 아예 없어졌다.  

     2004년 개통된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영향이다. 함창읍보다 큰 상주와 점촌에는 서울행 충주행 대구행 등 무정차 버스가 오히려 늘었다.
.  

     그러나 이들 버스는 함창읍에 서지 않는다. 함창 사람들이 대도시에 ‘빨리’ 가려면 상주나 점촌으로 나가야 한다. 돈도 더 들고, 품도 더 들게 됐다.

     문화당서점에서 만난 함창읍의 식자들은 함창이 상주와 점촌에 끼여 점이 되어 사라질 것이라며 염려했다. 신활력사업으로 상주는 
곶감 명품화, 문경은 오미자

     클러스트 구축으로 선정돼 연간 20억원씩 3년 동안 60억원을 지원받는다. 합창은 상주시의 읍이고, 점촌과는 5분 거리지만, 이 신활력사업의 활기는 함창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일부 농가들이 돈은 좀 벌겠지만…. 우리하고 상관이 있나?” 

     장이 파하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읍내 청소년들이 슬슬 거리로 나왔다. PC방에서 나오는 남자 고등학생들 3명은 이웃 점촌으로 
놀러 간단다.

     노래방에 갈 계획이다. 읍내 노래방에서 선생님이나 아버지를 만나면 머쓱하다. 어른들도 심심한 이 읍내 생활을 청소년들은 어떻게 견딜까. 함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대학교로 진학했다는 한 청년이 답을 해 주었다. “대학 갈 때까지만 해도 이 곳이 답답한 곳인 줄 몰랐어요.”  

 

 

                                                                                                                                  박미경 매일노동뉴스 기자 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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